석사 회고록

Intro

2022년 9월부터 시작하여 2024년 8월까지 이어진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에 대한 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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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원 입학 과정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아마 우리나라에 동일한 학교에 두 번 면접을 봐서 합격하여 입학하는 학생은 몇명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중에 하나인데, 온전히 나의 실수 때문에 입학이 취소되었다. 처음 합격했을 때, 학사 과정에서 졸업예정 서류를 뽑는 과정에서 교양 과목을 하나를 덜 채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계절 학기로는 이를 채울 수 없어 꼼짝없이 9학기를 다녀야했다. 그리고, 포항공대는 1학기 입학은 이러한 유예를 인정해주지는 않았다. 이때 당시 굉장히 부끄럽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간이 지나니 별 거 아니었다 싶긴하다. 한학기 동안 다시 재입학 준비를 하고, 연구실 교수님이 입학 이전에 수행할 일이나 수업을 몇몇 미리 제시해주셔서 미리 예습을 하며 무의미하게 보내지는 않고, 어렵지 않게 재입학을 할 수는 있었다. 이 사건이 내게 준 교훈은 큰 일은 생각보다 큰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고, 관점만 바꾸면 부정적으로 볼 게 몇 개 없다는 점이다.

입학 이후에 겪었던 문제는 언어적인 문제, 업무적인 문제, 그리고 사교적인 문제로 나뉠 수 있을 거 같다. 언어적인 문제에 대해서 먼저 다루어보자면, 앞서 말했던 대로 나는 반년 동안 입학을 더 준비할 시간이 있었는데 이 당시에 나는 언어적인 문제를 꽤나 겪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그렇겠지만, 영어는 내가 해결해야하는 과제이지만 최대한 미루고 싶은 과제였다. 이전까지는 사실 필요성이 딱히 없기도 했다. 영어권 국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으며, 외국인과 영어로 얘기를 해본 경험도 딱히 없다보니 읽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어도 말하거나 듣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내가 처음 포항에 내려갔을 때, 교수님과 외국인 학생 두 명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서 식사를 갔었다. 이때 3명이서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고 얘기를 하는데 정말 30%도 채알아듣지 못했던 거 같고, 나에게 모든 집중이 모였을 때는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입이 채 열리지 않아서 어버버 걸렸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은 꽤나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초반에는 두려웠다. 수업도 영어로 진행될 계획인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간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내가 어색하고 낯설어 하는 만큼 외국인 친구들은 먼저 다가와주었고, 내가 느려도 답답해하지 않았다. 항상 잘 웃어주었고, 먼저 자전거를 타고 근처 바다를 보러가자, 탁구를 치자. 항상 먼저 제안을 해주었다. 결국은 같이 땀 흘리고, 어색하게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어색하고 두려웠던 시간도 조금씩 즐겁고 소중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똑같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해야 알아듣는 경우도 있고, 대화를 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진땀을 빼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대화를 영어로 주고받는 게 두렵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편이다. 이렇게 도움을 준 외국인 친구들과 학회에서 만난 다양한 연구자분들에게 모두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업무적인 문제는 대학원에 처음 입학하고 3개월 정도가 되면서 생각했던 문제이다. 내가 처음 연구실에 지원을 했을 때, 연구실에서 하고자했던 연구는 분산 시스템 또는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최적화 관리법에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이 초기에 제안해주셨던 연구 주제는 화상 채팅 시스템의 최적화에 대한 연구였다. 즉, 비디오 및 오디오 데이터의 공유를 최적화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제시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이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해당 방향으로의 연구를 하겠다고 말을 해둔 상태였다. 연구실에서 관련 연구로 진행되었던 내용은 강화학습을 활용하여 비디오 공유 QoS를 최적화하는 연구였다.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 비디오 분야와 강화학습은 내가 생각했던 연구 분야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이로인해서 처음 적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그렇겠지만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 출근하는 것이 당연해지다시피 되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해도 이미 진행되어있는 연구 분야를 따라가는 것 그리고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것만도 벅찼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속 노력을 하며, 결국에는 비디오 트래픽을 GAN model을 활용해서 생성하는 연구를 논문으로 제안하기도 하였다. 사실 처음 논문은 한국어 논문에 아주 기초적인 연구였기에 부족했던 점이 더 많았다. 하지만, 결국은 결과물을 완성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 과정이 더 더욱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연구를 해야한다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이 시점부터 화상회의 팀보다 분산 시스템에 대한 최적화에 대한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고 있던 네트워크 팀에 대한 의지를 더 크게 어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결국 1년이 넘어가기 전에 해당 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같이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연구 논문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물론 해당 팀에서도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고, 나의 요구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들면, 나는 OpenStack보다는 Kubernetes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우리 연구 팀은 그렇지 않았다. 또한, 클라우드 시스템보다는 네트워크 최적화가 더 주요한 연구 주제였고,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연구 과제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알맞게 AI 중점적인 연구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나는 새롭게 배워야할 것은 배우고 해야할 일은 하되, 하고 싶은 것은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래서, Deep Learning과 강화학습을 배웠고, Routing Protocol을 공부하고, Cisco, Juniper 스위치를 설정하면서도, Kubernetes의 scheduling 방식에 대한 최적화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결국은 졸업 논문으로 이들을 결합한 논문을 제안했다. 나는 네트워크 팀에서 일하며, 네트워크 traffic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고, 그래서 이를 활용한 새로운 kubernetes scheduler를 제안했다. AI의 기술을 배웠고, AI가 복잡한 추론을 데이터를 통하여 일반화하는 능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kubernetes scheduler를 제안했다. 석사 과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기대어 연구를 하고 시간을 써왔는데, 마지막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배웠던 것들을 모두 집합하여 하나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인생은 점을 뿌리고, 선으로 연결하는 과정이라는 말처럼 헛된 경험은 없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나는 이 과정이 졸업 논문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큰 울림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사교적인 문제이다. 2년이라는 기간은 길면서도 짧았다. 다시 찾아온 군생활과 비슷하다고 하면 될 거 같다. 그때와 똑같이 나는 아는사람이라고는 일절없는 포항에 내려왔다. 사실 이러한 경험이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있었기에 그렇게 걱정은 없었지만, 막상 처음 시작할 때에는 외롭긴 했다. 또, 당시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을 마주하는 일도 크게 없다보니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연구실 그리고 학교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항상 친절하고 배울 게 많은 사람들이었다. 항상 긍정적인 미소를 보이는 멋진 형도 있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며 동기부여를 주는 친구, 해야할 일을 딱딱 정하고 계획적으로 수행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동료, 자기 자신에 솔직한 부러운 사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형, 하나하나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행도 자주 갔고 취미도 공유하며 많은 추억을 공유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자랑할 것이 하나있다면, 서울로 올라가는 날 같이 시간을 보내준 연구실 사람들 모두에게 엽서를 남기고 왔다. 첫인상은 바꿀 수 없지만 끝인상은 내가 만들 수 있고,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것이 우리의 첫인상이 되기를 바라며 남긴 마지막 편지였다.

Outro

석사 과정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무언가를 배우고, 탐구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 사항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 빈틈없이 검토하는 것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직면한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trial & error 의 반복을 통해서 항상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것이 왜 안되었지, 이제는 왜 되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의 중요성을 지금은 알게 되었다. 즉, 석사 과정이 나에게 안겨준 것은 분산 시스템에 대한 이해, 딥러닝에 대한 기반 지식, 컴퓨터 네트워크의 최신 트렌드만은 아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삶에 조금은 더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연구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산업계에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과 연구실 환경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산업계로 돌아왔다. 하지만, 후에 기회가 된다면 해외 박사 과정을 밟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석사 과정을 도전할 친구가 주변에 있다면, 나는 추천해주고 싶다. 하지만, 무엇을 하던 주도적으로 해야 자신이 한 행동을 탓하지 않고 온전히 되돌아보며 성장할 수 있다. 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연구실을 선택하는 것도, 연구 주제를 정하는 것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지만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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